남자들의 캠핑
오랜만의 사람들과 오랜만의 캠핑이다.
회사라는 수직적인 구조 속에서 수평적인 관계를 만들어낸 인연이라 값지다.
종종 가던 캠핑이었는데 후배 녀석이 회사를 떠난 이후로는 한동안 뜸했다.
그래도 연락이 닿고 인연의 끈을 놓지 않다 보니 다시 모이는 기회가 생겼다.
남자 넷이서 떠나는 캠핑은 헐겁다.
철저한 준비보다는 닥치는 상황에 따른 임기응변을 믿는다.
계곡으로 떠나면서 여벌 옷 하나 준비하지 못한 것만 봐도 알만하다
그래도 술과 고기만은 너나 할 것 없이 확실하게 챙기는 것이 사내들의 캠핑이다.
텐트를 치기 전 맥주 박스를 먼저 꺼낸다.
거사를 치르기 전 행하는 의식처럼 우리는 각자의 맥주캔을 딴다.
그냥 기분이 좋아지는 순간이다.
사실 이때부터 시작된 술판이란 걸 다들 알고 있다.
지금 부터는 끊임없이 입에 무언가를 넣고 열심히 움직여 소화시키는 작업의 연속이다.
이제 팀장이 된 제일 큰형이 마흔인데
굳이 딸아이 튜브를 가져와 바람을 넣어 달란다.
지난번 가족과 떠난 캠핑에서 비가 와 물놀이를 못했다나 어쨌다나...
나이 마흔의 불혹, 미혹되지 않는 이의 간절한 바람을 차마 거절할 수 없었다.
빵빵해진 튜브에 신이난 불혹의 형은 그 날 계곡에서 제일 신이 난 사람이 되었다.
어찌나 신나게 물놀이를 했는지 안경알 하나를 계곡물에 흘러 보내고 애꾸가 되어 돌아왔다.
그렇게 내일의 운전은 내 몫이 되었다.
해가 지면 고기를 굽는다.
그건 자연의 이치와 같다.
핏빛 선명한 2.2kg의 소고기가 오늘의 제물로 받쳐졌다.
1인당 550g의 할당량이다.
이 왕성한 식욕은 우리가 배 나온 아저씨가 되는데 혁혁한 공을 세우고 있다.
맥주가 동이 나고
소주 2박스를 비울 때쯤 누군가 객기를 부리기 시작한다.
식을 대로 식은 차가운 계곡물에 빠지는 건 예견된 수순이었다.
아무리 정신을 집중해 징검다리를 건너보지만
이미 고장 난 달팽이관은 내 몸을 계곡물에 가차 없이 내친다.
갈아입을 옷은 없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얕은 계곡물을 침대 삼아 벌러덩 누워 버렸다.
힘을 뺄수록 몸은 두둥실 떠오르고
칠흑 같은 밤하늘에 달빛이 눈부시다.
달빛에 흠뻑 젖은 몸은 시원하기만 하다.
그리고는 텐트 안에서 눈을 떴다.
속이 쓰리고 머리가 터질 것 같다.
월광욕을 마치고 찾아오는 한기에 고량주를 몇 순배 돌린 것까지가 살아남은 어제의 기억이다.
젖은 옷들은 옆에 잘 널어져 있고 후배의 반바지를 입고 있었다.
눈 뜨자 고기를 굽고 있는 걸 보니 나 말고는 다들 무사한 아침을 맞이한 것 같다.
결국 화장실로 뛰어가 어제의 흔적들을 게워내고
탱크보이를 입에 물리니 정신이 좀 돌아온다.
징글맞겠지만 이게 남자들의 캠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