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1시가 다 되어 한 통의 전화가 온다.
동생이다.
가뜩이나 불면증으로 고생하는 형의 폰을 이 시간에 울린다는 건
분노의 짜증을 감수하고도 남을 어떤 일이 생긴 거다.
힘들게 진입한 렘수면 단계에서 눈을 떠
대충 옷을 갈아 입고 지하 주차장으로 내려갔다.
상황은 이랬다.
주차를 하다가 가만히 있는 차를 긁었고
당황해서 형 한테 연락을 했다.
100% 과실이긴 하지만
목격자는 없다.
심적 갈등을 일으킬 만한 상황이다.
그 짦은 순간에도
머릿속은 두 가지 선택에 대한 시뮬레이션을 열심히 돌린다.
빠밤빠빠밤빰 빠밤빠 빰빠바바~
익숙한 BGM이 환청으로 들리는 듯 했다.
불완전한 도덕성의 형태를 취하긴 했지만
일단 메모를 남기기로 했다.
숙면을 방해한 것에 대한 원망과
차주가 원하는 보상이
상식선에서 해결될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으로
신성한 주말 밤의 기분이 오염되었다.
차주는 월요일이 되어서야 연락이 왔다.
주말 동안의 마음 졸임을 보상하는 듯
양심고백에 대한 감사를 먼저 표했다.
손으로 닦이지 않은 상처만 가까운 곳에서 수리를 했다는데
그 비용이 일주일 기름값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터무니없는 요구로 얼굴을 붉힌 경험이 있는 터라
차주의 마음 씀씀이가 고맙기 그지 없다.
결국 일주일치의 기름값을 더 얹어
괜한 일로 신경 쓴 것에 대한 미안함을 전했다.
아직 우리 사는 세상은
바르게 살 만한 여지가 있음을 확인한다.
Leica Mini | Leica Elmar 35mm F3.5 | Perutz Primera 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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