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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vel/..outside Korea

그 어떤 우울한 단어는 배제된 계획도시, PAI(빠이)

Pai, 치망마이에서 3시간.
끝도 없이 굽이치는 커브길에 속이 다 거린다.

바이킹을 연속 3번 쯤 탔을 때 찾아오는 그 느낌이다.
시큼한 침을 계속 삼키는데 어제 저녁 메뉴를 연상시키는 미묘한 맛이 난다.
길도 그렇고 속도 그렇고 빠이로 향하는 길은 그리 유쾌하지 않았다.


여행의 피로도는 동선과 비례한다.
3박5일의 짦은 일정속에 짐을 한번 더 싸는 일은 괜한 이라 여겼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아니다 아니다를 외치면서
요동치는 차안에서 하루 삭힌 똠양꿍 맛을 음미하고 있는걸 보면
난 빠이의 무언가에 버린거다.








31-JAN-2014, REGGAE ON THE RIVER
내가 이 어메이징한 사실을 알았을 땐 이미 달력은 2월로 넘어가고 있었다.
가끔 명백한 사실을 두고도 이건 아니라고 떼쓰고 싶어질 때가 있는데 이 때가 그랬다.
발길은 떨어지지 않았고 시간을 돌릴 수 없음 나의 무능함 처럼 느껴졌다.
이 지난 포스터 앞에서 이토록 심각해질 수 있는 건 다 놈의 레게 때문이다.


나는 언제부턴가 이 음악에 미쳐 있었다.

노이즈 낀 빈티지 Synth에 손 끝 힘이 느껴지는 EP가 더해지고
촉촉한 스네어가 귓가를 울리면 두뇌를 거치지 않은 바운스 명령이 온 몸구석구석 전달되는 느낌이다.
생각만으로 어깨가 들썩이는건 나 뿐인가?

01-FEB-2014, 결국 이날의 심이 몽상을 낳았고 그 상이 오기를 부려 빠이로 향하게 된 거다.










M O D e r n S
모던재즈와 소울, 리듬앤블루스, 스카등의 음악을 쫓아 언더그라운드 클럽을 전전하며

베스파나 람브레타 같은 이탈리안 스쿠터로 허세를 표출했던 60년대 영국의 젊은 계층 MODS.
그들의 실상은 도시의 저임금 노동층 이었지만
주말이면 환골탈태하여 한 껏 멋을 부리고 그들만의 일탈을 즐겼다.


깔끔한 수트에 야상점퍼 그리고 스쿠터.
샌들에 양말 같은 이 이상한 조합은 모즈이라는 하나의 문화로 발전했고
그 영향을 받은 네 명의 더벅머리 청년이 비틀즈라는 사실은 너무나도 유명하다.
모즈컬쳐는 70년대 후반 네오모즈 붐을 걸쳐 지금에 이르기까지 반항끼 충만한 젊은이들의 지지를 받고 있다.


젊은 예술가들이 모이는 이 곳, 빠이
패와 전, 항과
그 청춘의 특권을 누린다는 점에서
종종 눈에 띄는 베스파가 참 잘 어울리는 도시라는 생각이 든다.








vote for What???
이제 막 한잔의 술을 비웠을 뿐인데 가게가 문을 닫는다.
이유인 즉슨 내일이 선거일이라 10시 이후로는 술을 팔지 않는다는 것이다.
빠이에서의 첫날밤이 곧 마지막 밤인 내겐 참 맞은 소리로만 들렸다.
적어도 나에게 표권이라도 주고 그런 말을 해야하는 것 아닌가?
누구보다 긴긴 밤을 만들어야 할 나는 그 사실을 인정할 수가 없었다.


결국 옆에 있던 러시아 출신의 어떤의 바이크에 올라탔다.
느낌은 포데로사에 위의 에르네스토와 알베르토 였지만 실상은 혁명의지 제로의 단지 술 고픈 두 청년이다.
달밤의 라이딩은 이 BAR에서 저 BAR로 주인장의 "NO"라는 신호에 맞춰 이뤄졌다.
그렇게 둘이서 동네에 있는 Bar란 Bar는 다 돌아 다닌 것 같다.
빠이에 있는 BAR의 숫자만큼 안된다는 소리를 들은 후에야 마지막 남은 한 곳을 향한다.









공모자, MR.T
세상 어딜가나 이란 것이 존재한다.
살짝 정의롭지 못한 것에 대해 타당성을 부여 하기도 하고
딱딱한 정의 구현보다는 사람사는 세상임을 말해주는 고마운 제도.
마지막에 만난 주인장 MR.T는 그런 불문율의 미덕을 갖춘 사람이었다.
그게 아니라면 알콜에 굶주린 건장한 두 청년이 내뿜는 살기를 느낀 건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논밭 한 가운데 오두막 처럼 자리잡은 BAR는 이날의 마지막 선택이었음을 다시 한번 상기시킨다.
아래 개구리 울음소리를 들으며 술을 마셔 본 적이 있었던가?
음악을 쫓아 이 곳까지 왔지만 정작 그 순간 만큼은 음악이 없어 완벽했던 것으로 기억된다.










굿, 이...

그렇게 빠이에서의 24시간이 흘렀다.
미쳐 다 풀지도 못한 짐을 다시 꾸린다.
제대로 비워내지 못한 대는 쉬움으로 남아 발걸음을 더 무겁게 한다.
이젠 익숙할 법도 한데 여행의 마지막 날은 항상 이렇게 찜찜한 기분을 같이 담아 낸다.


버스 유리창 너머로 그 마지막 풍경들려 보낸다.

분명 어제와 똑같은 풍경을 지나 이곳에 왔겠지만 추억을 담은 풍경은 또 다른 풍경이 되어 간직될 테다.
숟갈 들다 미소지을 지도 모르고
익숙한 노래에 사진을 뒤적일 지도 모른다.
그리고 개구리 우는 여름밤 찾아오면 MR.T가 생각날 지도 모르겠다.
아무리 되새겨도 닳지 않을 추억이라 생각하니 떠나는 아쉬움이 좀 가신다.


버스가 다시 요동치기 시작한다.
스멀스멀 올라오는 를 눌러 담으며 어제 듣다 남은 음악을 귀에 꽂았다.
똠양꿍을 먹지 않은 것을 다행이라 여기며 어서 렘 수면 단계에 이르기를 기도한다.










Canon EOS 5D Mark2 | Canon 24-105mm F4.0L | ISO 200 | Pai 2014


Canon EOS 5D Mark2 | Canon 24-105mm F4.0L | ISO 100 | Pai 2014


Canon EOS 5D Mark2 | Canon 24-105mm F4.0L | ISO 100 | Pai 2014


Canon EOS 5D Mark2 | Canon 24-105mm F4.0L | ISO 100 | Pai 2014


Canon EOS 5D Mark2 | Canon 24-105mm F4.0L | ISO 100 | Pai 2014


Canon EOS 5D Mark2 | Canon 24-105mm F4.0L | ISO 100 | Pai 2014


Canon EOS 5D Mark2 | Canon 24-105mm F4.0L | ISO 200 | Pai 2014


Canon EOS 5D Mark2 | Canon 24-105mm F4.0L | ISO 200 | Pai 2014


Canon EOS 5D Mark2 | Canon 24-105mm F4.0L | ISO 200 | Pai 2014


Canon EOS 5D Mark2 | Canon 24-105mm F4.0L | ISO 200 | Pai 2014


Canon EOS 5D Mark2 | Canon 24-105mm F4.0L | ISO 200 | Pai 2014


Canon EOS 5D Mark2 | Canon 24-105mm F4.0L | ISO 320 | Pai 2014


Canon EOS 5D Mark2 | Canon 24-105mm F4.0L | ISO 100 | Pai 2014


Canon EOS 5D Mark2 | Canon 24-105mm F4.0L | ISO 100 | Pai 2014


Canon EOS 5D Mark2 | Canon 24-105mm F4.0L | ISO 100 | Pai 2014


Canon EOS 5D Mark2 | Canon 24-105mm F4.0L | ISO 100 | Pai 2014


Canon EOS 5D Mark2 | Canon 24-105mm F4.0L | ISO 200 | Pai 2014


Canon EOS 5D Mark2 | Canon 50mm F1.4 | ISO 200 | Pai 2014


Canon EOS 5D Mark2 | Canon 50mm F1.4 | ISO 500 | Pai 2014


Canon EOS 5D Mark2 | Canon 24-105mm F4.0L | ISO 800 | Pai 2014


Canon EOS 5D Mark2 | Canon 50mm F1.4 | ISO 200 | Pai 2014


Canon EOS 5D Mark2 | Canon 50mm F1.4 | ISO 400 | Pai 20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