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 같았으면 무심코 지나쳤을 공중전화를 유심히 바라본다.
올려진 수화기와 20원의 잔액
이렇게 사용의 흔적을 보는 게 얼마 만의 일인지 모르겠다.
지나간 세월은 과거를 낯설게 만들었고
익숙했던 공중전화 마저 새로운 풍경이 되어 눈에 들어온다.
누군지 모르지만 왠지 그 모습이 상상이 되었다.
공중전화를 쓸 수밖에 없는 급한 일이 있었을 테고
전화번호를 외우고 다닐만한 가까운 사람에게 전화를 하지 않았을까?
전화가 길어졌다면 철컹하고 넘어가는 동전 소리에
마음이 조급해졌을지도 모른다.
그러면서 동시에 주머니에 남은 동전을 만지작거렸을 것이다.
통화가 끝나고 그냥 수화기를 내려놓았을 법도 한데
남은 20원을 버리지 않고 재발신을 눌러주는 매너를 발휘했다.
적어도 공중전화 사용에 익숙했던 세대임이 분명하다.
뒷사람을 위한 배려를 남겼지만
그 배려를 받을 사람이 언제 나타날지는 미지수다.
얼마 전 충격적인 기사를 접했다.
우리나라로 치면 유치원에서 초등학교 저학년 정도의 친구들이
아날로그시계를 볼 줄 모른다는 사실이다.
태어나면서부터 스마트폰을 접한 그들에게
시간은 그저 디지털 숫자로만 표기되는 단위가 돼버렸다.
그러면서 리포터가 스마트폰의 통화버튼 아이콘을 가리키며
왜 이렇게 디자인되었는지 아느냐고 묻자
아이들은 한결같이 모르겠다는 반응이다.
말 그대로 유선전화를 경험하지 못한 세대들의 등장인 셈이다.
내게 그 정도 또래의 아이가 있었다면
스마트폰의 수화기 모양 아이콘을 보여주며
왜 이렇게 생겼는지를 물어보고
스마트폰이 아닌 전화기에 대해 알려주고 싶다.
길을 가다 마주친 공중전화 박스에 들어가
아이콘 모양을 꼭 닮은 수화기를 보여주고
동전이 철컹하고 내려가는 소리도 들려주고 싶다.
터치가 아닌 꾹꾹 눌러 담는 숫자 버튼을 통해
아빠에게 전화를 해보라 권하고 싶다.
그렇게 공중전화가 완전히 사라지기 전에
아날로그로 전하는 아빠의 목소리를 한 번쯤은 들려주고 싶다.
멸종위기종을 관리하는 것처럼
멸종되어가는 우리의 추억도 한 번씩 돌이켜 주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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