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이상 돌아다닐 수가 없었다.
논문이라도 쓸 마냥 꼼꼼히 살피던 열정은
내리 쬐는 7월의 태양에 타버린지 오래다.
생각보다 거대했던 앙코르 왓의 유적을 하루만에 다 보려던 욕심 탓이다.
중간쯤이나 갔을까...
사원을 둘러보고 다시 내리 쬐는 태양속으로 나서려니 도무지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는다.
영화 '나는 전설이다'에 나왔던 좀비가 이 심정 이었을 거다.
결국 나서기를 포기하고 근처 돌바닥에 앉는데 차가운 돌바닥이 기다렸다는 듯 열을 빨아들인다.
열전도율을 높이기 위해서는 단위면적을 넓혀야 하는 법.
에라이, 모르겠다하고 그 상태로 벌러덩 누워 버렸다.
배낭을 베개삼고 모자를 커텐삼으니 절로 사색에 빠져든다.
20대의 가운데가 묻는다.
누구보다 너의 20대는 20대 다워야 하고 후회 없기를 소망했느데 그런 것 같냐고.
글쎄...
생각해 보면 이것 저것 참 많이 하긴 했다.
어떻게 그 많은 걸 다 했나 싶을 정도로.
항상 웃는 얼굴이었고 하루하루가 신이 났다.
학교성적은 기대 이하 일지 몰라도 행복지수는 항상 기대 이상이었으니.
이정도면 20대의 전반전은 휼륭했다고 본다.
무모했지만 충분히 공격적이었고 서툴렀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20대의 가운데가 다시 묻는다.
그럼 후반전은 좀 달라져야 하지 않겠냐고.
글쎄...
나도 마침 고민 중 이었다.
학생이란 보호막을 벗어나 사회란 전쟁터로 나갈 준비를 해야하는데
무엇보다 나 스스로를 지킬 무기가 필요했다.
이상과 현실의 괴리 속에서 빗발치는 사상들을 필터링 할 수 있는 능력.
생각의 독립이 필요했다.
어쩌면 내 생각이라고 믿고 있는 것 조차 나의 것이 아닌지도 모른다.
나도 모르게 무방비 상태로 받아들여진 타인의 생각을 내가 주인인냥 행세하고 다녔을지도.
정말 내 생각을 알고 싶어 졌다.
정말 나를 알고 싶어 졌다.
그렇게 머릿속은 복잡했지만 생각은 선명해졌다.
20대의 후반전을 어떻게 해야할지 가닥이 잡히는 것 같았다.
이미 굳어 소금기가 되어 버린 땀을 훌훌 털어내고 일어썼다.
아직 반나절이 남았지만 이것으로 충분했다.
이미 많은 것을 얻었고 더 이상 욕심 부리고 싶지 않았다.
Canon EOS 30D | Tamron 28-75mm F2.8 | ISO 800 | Angkor Wat 2008
Canon EOS 30D | Tamron 28-75mm F2.8 | ISO 200 | Angkor Wat 2008
Canon EOS 30D | Tamron 28-75mm F2.8 | ISO 200 | Angkor Wat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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